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구세군 정신을 바탕으로 서대문과 충정로에 아동구제시설인 혜천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1926년에는 윤락여성을 위한 여자 관과 교육사업인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24년부터는 재난에 대한 구호를 실시하여 선교에 못지않게 사회사업에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에는 의료 선교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는 후에 이동 진료소, 영동병원 개원으로 이어졌다.
또한, 민중계몽을 위해 절제운동 및 교육 사업을 펼쳤는데, 1921년에는 첫 번째 금주호를 2만부나 발간하고 적극적인 금주, 금연운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최초의 자선냄비가 서울 거리에 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255여개의 영문(교회)과 100,000여명의 교인, 정부보조시설 68개, 전문사회사업시설 95개, 특별기관 31개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등 선교 와 사회사업에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 구세군이 선교를 시작한 것은 1907년 구세군의 창립자 월리엄 부스가 40일간의 일본 순회선교 중 구세군을 통하여 조선사회의 개혁을 원했던 무명의 조선 유학생들이 윌러엄 부스를 만나 조선에도 구세군을 세워줄 것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08년 10월 호가드(1861-1935년, 한국명 : 허가두)사관과 그의 부인 애니존스(1862-1941년) 사관이 한국 땅을 밟으므로 시작되었다.
구세군이 한국에 개척된 1908년의 시대적 상황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으로 망국의 기운이 감도는 때였기에 새로운 소망을 찾는 한국 국민들에게 구세군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강대국이 파견한 군대로 비춰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해로 선교 초기부터 큰 관심을 끌며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고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 허가두 사관을 비롯한 구세군 개척단이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군대”라는 구세군의 정체성에 따라 헌신적으로 한국 선교에 임한 결화 개척사관 허가두와 그의 부인 애니 존스가 한국을 떠나는 1916년에도 구세군교회 78개소와 사관 87명, 그리고 교인 4800여명으로 성장하여 한국구세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구세군은 한국선교 초기부터 복음을 통한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민중계몽, 여성지휘 향상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따른 사회 구원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복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시골 구석구석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영혼 구원에 힘쓰셨으며, 1909년에도 『구세신무(오늘날 구세공보)』 의 발행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구세신문에는 구세군 내적인 소식과 함께 해외 소식이 실려 해외 정부루트가 되기도 하였으며, 농사법 여성교육, 가정생활 등 다양한 기사를 실어 마땅히 읽을거리가 없고 교육 방법과 정보가 제한돼 있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민중계몽과 사회 개혁, 한국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일제에 의해 나라가 패망함으로 국민들은 자포자기 가운데 술과 퇴폐문화로 세월을 낭비하였고 게다가 1919년 3.1 만세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더욱더 희망을 잃고 술과 퇴폐문화로 세월을 보내는 국민들이 늘어가자 한국구세군은 1921년부터 『구세신문 - 금주호』발행을 통하여 전국적인 ‘금주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이 금주운동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술과 퇴폐문화, 가정파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이끌었다. 이 운동은 ‘건전생활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해마다 3월이면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한편 구세군은 개척 초기부터 빈민을 위한 사회사업에 적극적으로 힘써 왔는데, 1918년 추운 날씨에 고통당하는 빈민들의 긴급구호를 목적으로 ‘급식소’ 및 ‘장작배급소’를 시작하였으며, 부모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구세군후생학원(고아원)을 세워 고아들을 돌봐왔는데, 오늘날 서울, 군산, 대구, 대전 등에 설립되어 있다.
또한 1920년대 후반 한국 경제의 어려움과 일제의 곡물 수탁 때문에 경제적으로 피폐한 국민이 늘어가고 도시빈민이 증가하자 구세군은 빈민구제의 일환으로 이미 미국에서 시릿하고 있었던 ‘자선냄비 모금활동’을 1928년 도입하여 실시하였고, 이 모금액으로 도시빈민들이 무사히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쌀 배급과 급식, 그리고 숙소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구세군은 해마다 12월이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자선냄비 모금운동을 실 시하게 되었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모금의 대명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구세군은 영혼 구원과 사회구원을 모적으로 한국 국민들, 특히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나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일제에 의한 국제 구세군과의 단절 그리고 구세 단 시절을 거치면서 조직은 점점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해방 후 국제 구세군과의 협력 속에 조직을 정비하려 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한국구세군 사령관은 북한군의 포로로 납북되었으며, 노영숙, 박종섭, 강기모 사관이 순교하고 김삼석, 박종섭 사관과 유영복 정교가 납북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한국 구세군은 국제 구세군의 도움 속에 지기하기 시작했으며 전쟁 후 복구사업에 참여하여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였던 빈민과 피난민, 고아 등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구세군은 과거 역사가 보여주듯 늘 국민과 함께하며 1960년, 1970년, 1980년 꾸준한 성장과 발전 속에서 구세군이 한국사회에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1교회 1병설시설 운동’으로 더욱더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로 발돋움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오늘날 한국 구세군은 교회가 있는 곳마다 다수의 사회복지시설이 지역사회에서 봉사고 있어 영혼구원을 위한 교회와 사회구원을 위한 지역사회 복지시설과 복합선교의 장을 열며 사람들의 영혼과 삶을 돌보고 있다.
2008년 구세군은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선교 100주년을 맞아 ‘회복, 능력, 거룩한 전진’이라는 주제로 100주년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서 한국 구세군은 지난 100년 동안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과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감사와 회개를 통한 회복과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거룩한 전진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희망 프로젝트 2028”을 가동하기 시작하였으며, 구세군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구세군을 세우신 하나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더욱 전진할 것을 다짐했다.

| 사업명 | 사업기간 | 사업지역 | 사업내용 |
|---|---|---|---|
| 육아사업시설운영 (보육시설) |
1920~현재 | 서울,군산, 대전(2),대구 |
일제시대와 6.25동란, 그리고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된 고아들에게 새로운 삶의 안식처 제공 |
| 자선냄비모금운동 | 1928~현재 | 전국 | 구세군에서 매년 12월에 실시되는 각종 사회사업의 원동력이며 불우 이웃돕기를 위한 전 국민 운동으로 확산 |
| 긴급재난 구호사업 |
1928~현재 | 전국 | 천재지변 또는 긴급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구세군 사회부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구세군영문(교회)들이 협력하여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다. |
| 무료 급식사업 |
1928~현재 | 전국 | 결식노인, 무의탁노인, 노숙인 들에게 무료급식을 하여 개인의 육체건강도모와 사회적 건강을 도모 |
| 여성복지시설운영 (양로원, 요양원) |
1954~현재 | 서울, 부산, 대전 | 미혼모, 윤락녀, 학대받는 여성들을 위해 일시적 보호 및 직업 보도사업 |
| 노인복지시설운영 (양로원, 요양원) |
1955~현재 | 과천 | 노인들에게 남은여생을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삶의 안식처를 제공 |
| 알콜, 마약중독자 상담 및 지원사업 |
1955~현재 | 과천 | 알콜, 마약중독자들로부터 발생되는 사회적 문제를 예방치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들을 상담 |
| 보육사업 (60곳) | 1964~현재 | 전국 | 가정형편이 어려워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가정의 아동들을 보육 |
| 노숙자 보호사업 (4곳) |
1987~현재 | 전국 | 가정파탄이나 정신장애로 거처할 곳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임시로 거처할 수 있는 곳을 제공 |
| 상담시설사업 (6곳) |
1989~현재 | 대전, 대구, 천안 | 산업화의 영향으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아동, 청소년, 여성, 노인 등으로부터 각종 인생문제 및 가정문제에 대해 상담이 필요한 때에 상담을 통해 문제의 예방, 치료 |
| 기술고등교육사업 | 1983~~현재 | 인천 | 산업화와 공업화의 영향으로 전문기술 인력이 필요한 때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술교육의 과정을 통해 우수한 산업인력을 배출 |
| 사회복지관 운영 | 1990~현재 | 서울(2), 서산, 평택, 보령 |
도시 달동네 중산층지역, 농촌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 복지 향상에 기여 |
| 재가복지센터운영 | 1990~현재 | 서울(미아동, 평택, 보령),서산 |
무의탁 노인, 소년소녀가장가정, 복지관을 이용할 수 없는 서비스 대상자들에 서비스 제공 |
| 심장병환자수술비 지원사업 |
1995~현재 | 전국 | 국립의료원과 협력하여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저소득층들 중에 심장병 수술비 지원 |
| 장애인 지원사업 |
현재 | 전국 | 각종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보장기구 지원과 경제적 지원을 도모하고 있다. |